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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 폴리아 되>는 조커인아서 플렉(이하 아서)과 하를린 퀸젤(이하 하를린)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그들의 복잡한 관계와 내적 갈등을 탐구한다. 2년 전, 고담시의 아이콘으로 자리한 아서는 현재 아캄 수용소에 갇혀 최후의 재판을 기다리고있다. 이때 수용소에서 만난 하를린은 아서의 삶을 뒤흔들며 수용소에서 그의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조커를 깨우며 하를린 역시 자신을 ‘할리퀸’으로 칭하고 아서와의 관계에 빠져들게 된다. 아서는 무고한 시민을 죽인 죄로 재판을 받게 되며, 이 과정에서 할리 퀸과 함께 조커의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조커: 폴리아 되>는 2019년에 개봉한 <조커>의 후속작으로 내용이 이어진다. <조커>는 <다크 나이트>이후로 최고의 배트맨 프랜차이즈 영화라는 극찬과 함께 10억 불이 넘는 월드 박스오피스를 기록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관객 500만을 돌파한 만큼 흥행한 영화다. 그러나 후속작인<조커: 폴리아 되>는 전작에 비해 혹평이 쏟아졌다. 관람객들의 혹평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조커: 폴리아 되>에서는 어두운 영화의 분위기와 다르게 사랑과 관련된 뮤지컬이 계속 나오며 영화의 흐름을 방해한다. 긴장감과 분위기가 고조되는 순간에 노래와 춤을추는 것이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아서가 영화 후반부 마지막 재판에서 자신은 고담시의 어둠의 왕, 고담 시민들의 우상이 아닌 그저 사람을 죽인 범죄자 아서플렉임을 자수하며, 스스로가 본인이조커가 아님을 인정함으로써 전작에서 쌓아 올린 ‘조커’의 서사가 무너졌다는 평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아서는 사회의 냉소적인 시선과 무관심 속에서 조커라는 살인자를 탄생시켰다. 늘 혼자였던 그는 조커가 됨으로써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조커라는 인물은 없고 그 칭송받던 조커도 그저 자신인 아서라는 것을 인정하자마자 재판장에 있던 시민들과 조커를 사랑한 하를린마저 그를 떠나게 되었다. 조커를 사랑했던 이영화의 관객들 또한 아서에게 등을 돌리며 조커를 잃었다는 이유로 혹평을 남기게 되었다. 또한 아서는 결국조커를 추종하던 범죄자에 의해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조커가 아닌 아서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조커는 사회의 무관심에서 탄생한 잔인한 살인자이다. 아서가 조커이고 조커가 아서일 뿐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서가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지, 살인자 조커에 대한 것이 아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조커를 사랑했을 뿐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서 자체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를 본 후에 관람평을 다시 찾아보며 결국 사회에 다시 버림받은 아서가 현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것 같았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이 사람이 왜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보다 눈앞의 결과만 보고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사회의 모습이 생각나 씁쓸했다. 동시에 이러한 혹평까지도 영화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 들어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커: 폴리아 되>는 단순한 범죄영화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얼마나 쉽게 개인을 외면하고 낙오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커라는 존재는 사랑받을 수 있지만 조커의 본모습인 아서는 여전히 혼자라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남긴다. 아서가 잠시나마 조커라는 상징으로 인정받고 사랑받았다 해도, 결국 그 본질적인 외로움은 끝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느껴졌다.
조커의 분장에 숨겨진 아서의 상처와 외로움, 더 나아가 현재 사회의 외로운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였다.
글 한선영 기자